국민연금

우리가 지켜줄게요

근로복지공단 보험가입부 | 2017-12-13 00:00
               

(2017년 국민연금 생활수기 당선작입니다.)

저는 2015년 5월 말부터 간암으로 투병 중이시던 친정 엄마와 같은 병을 가진 미혼의 친정 오빠까지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돌봐야 했습니다. 그러다 그해 11월 엄마는 간암 판정 이후 5년여 만에 별세하셨습니다. 엄마를 장지에 모시던 날, 숨이 가빠와 너무도 힘들어하는 오빠를 남편과 제가 바로 서울의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엄마를 잃은 슬픔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떠안게 된 오빠. 엄마가 마지막으로 가시는 길에 전 엄마에게 약속했답니다. 오빠는 제가 잘 모실 테니 엄마는 오빠 걱정으로 평생 가슴 아팠던 거 잊고 그곳에서 행복하시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보내기가 무섭게 바로 오빠를 돌보기란 만만치 않았습니다. 서울에서의 병원살이는 엄마 때보다 몇 곱절 힘들기만 하였습니다. 난생 처음 접한 ‘간성혼수’. 오빠는 병세가 악화되어 간의 독소가 머리로 올라가 마치 치매 노인처럼 이상행동을 보이며 날을 지새우는 등 너무도 힘들게 하였습니다. 저희 남매는 B형간염 수직간염으로 모두가 보균인자를 가지고 있어 오빠에게 간 이식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증자가 나타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던 중, 그해 연말 드디어 오빠는 이식 대상자 순위에 어렵게 올랐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간 이식 대상자가 되면 그 사람에겐 딱 2주의 시간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주간의 간절한 기대는 결국 물거품이 되었고, 이에 낙담한 오빠는 중환자실까지 들어가 투석을 시작했습니다. 그해 연말에는 모든 걸 포기하고 제가 살고 있는 전주로 구급차를 타고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전주에서도 투석 치료는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국민연금의 장애연금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오빠가 직장 생활하면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했거든요. 공단에 문의하니 관련 서류를 준비해서 방문해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전주와 서울을 오가며 오빠가 그간 치료를 받았던 병원에서 서류를 떼다가 공단에 제출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월 50만 원 정도를 장애연금으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얘기하시더군요. 투석비용은 해결 되겠구나 하던 중에 공단 담당자분이 오빠가 간경화와 간경변의 병력도 있으니 추가로 신청해보라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오빠가 최초로 치료를 받았던 경기도 용인의 병원까지 방문해서 서류를 떼어 공단에 제출했습니다. 모든 심사가 끝나고 공단 담당자분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10여 년간 미지급되었던 장애연금이 일시금으로 정산되어 지급되고, 앞으로도 매월 62만 원 정도를 장애연금으로 받게 되었다고요. 여러 병원에서 서류를 떼어야 했던 그간의 수고를 다 보상받는 것처럼 너무나 기뻤습니다.


가끔 TV에서 ‘국민연금은 소득이 낮은 사람들에게 더 유리한 제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 반 동안 엄마와 오빠의 병간호를 하면서, 특히 오빠로 인해 국민연금의 소중함을 느꼈습니다. 건강은 자만하지 않아야 함을, 그리고 내 미래를 지킬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국민연금만큼은 꼭 납부해야겠다는 것을요.

오빠는 간암이 재발하여 이번 주말부터 다시 입원 치료를 시작합니다. 이젠 폐까지 전이되어 간 이식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투석을 할 때마다 팔, 다리에 쥐가 나서 힘들어하는 오빠를 볼 때마다 저도 무기력해지지만, 부디 저희 오빠가 힘들어하지 않고 지금처럼 더 많은 시간을 저희 가족과 함께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비록 오빠는 가정을 이루지 못했지만 오빠에겐 딸 못지않은 조카와 이 동생까지 있으니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2017-11-09]


출처:국민연금 뉴스-따뜻한 세상 ( ☞ http://bitly.kr/vR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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