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어머니와 국민연금

근로복지공단 보험가입부 | 2017-12-13 00:00
               

(2016년도 수급자 생활수기 당선작입니다.)


지금은 계시지 않는다. 벌써 올해가 7년째가 되어가는 것 같다. 법 없이도 사신다고 다들 얘기하셨던 분이다. 누구보다도 온화하고 누구보다도 부지런하셨고, 누구보다도 보수적인 분이셨다. 낮에는 점심을 잡수시고 잠을 주무셔도 들의 논머리에서 잠을 주무시는 전형적인 농부였다. 그분은 다름 아닌 아버지셨다.


하루에 말씀은 몇 마디 하지 않으셨고 그저 일밖에 모르시는, 본인도 그러했고 자녀들도 그런 방식으로 길러 오셨다. 풍족하지 못한 살림으로 5남매를 보릿고개 넘겨가며 다들 자리를 잡도록 터를 만들어 주시고는 돌아가셨다.

그렇지만 아버지, 어머니의 부부로서의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평등이란 아예 먼 나라 얘기였다. 아버지의 보수적 사고에서 나오는 일방적인 명령과 지시, 독단적 생각은 진취적 성격을 가진 어머니와 애초에 어우러질 수 없는 성격으로 아웅다웅 하시며 보내온 시간이었다. 매사 어떤 한 가지 일이 있으면 의견은 늘 대립되었고 그 과정에서 타협이란 힘든 그런 실정이었다.



어느 핸가 국민연금이란 제도가 시행된다고 마을 이장님이 방송도 하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저녁 밥상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던 차에 어머니께서 국민연금 얘기를 꺼내셨다. 한 달에 2-3만 원만 내면 나중에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면 죽을 때까지 매달 거의 10여만 원씩 받는다는 거였다. 지금 나의 기억으로도 그 당시 납부해야 할 연한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한참 설명을 하시다가 그 다음 일은 누구나 상상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아버지의 말씀, 죽으면 그만인데 무슨 돈을 넣느냐, 그거 다 돈 떼어 먹으려는 짓이다는 등, 언제부터 그런 거 바라보고 살았냐는 등 별의 별 말씀을 다하셨다. 연금에 대한 생소함 때문이었다. 듣고 있는 나로서도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말씀을 드려도 본인의 생각은 영 고칠 생각이 없으셨다.

어머니 성격에 막상 일이 반대에 부딪치니 아버지 도움 없이 본인의 의지로 국민연금 문제를 해결하실 요량이셨다. 집안의 농사지어 나온 금전은 모두가 아버지께서 관리를 하셨기에 더 이상은 거론할 여지가 없는 문제로 남았던 것 같다.

그래서 고심 끝에 농사를 짓는 틈틈이 국민연금 납부 금액 마련을 위해 허드렛일, 품앗이, 청소일 등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일을 참아가며 오직 국민연금 납부를 일념으로 하루하루 해 오셨다. 그러다보니 밖에서 일하시다가 늦게 집에 오시는 날이면 청천벽력 같은 아버지 호통은 그치질 않으셨다. 남몰래 집 한 켠에서 서러워, 원망스러워, 현실이 답답해 우시는 어머니 모습을 몇 번 본적이 있었다.

그렇게 몇 해를 해 왔을까 드디어 고대하던 국민연금 완납이 되고 혜택을 보게 되던 날, 어머니께서는 매달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고정적으로 나오는 돈이라 더 없이 기뻐하셨고 그런 사정을 알게 된 아버지께서는 옆에서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워낙이 과묵하신 성격탓도 있으셨지만 작금의 일이 아무 말씀을 못하실 그런 상황이었으리라.

그 이후 어머니께서는 워낙 씀씀이가 없으셨기에 풍족하진 못해도 아쉬운대로 요긴하게 잘 써오셨던 것 같다. 쓰시고 조금 남는 것이 있으면 장날 가셔서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고등어랑, 막걸리 등 몇 가지 장을 봐 오시기도 하곤 했다.



이런 아프고 힘든 과정을 거쳐 함께한 국민연금이 지금 어머니에겐 그 어느 것보다 더 큰 위안이 되고 울타리가 되어주고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불입할 때의 힘들었던 때, 어려움 그 모든 것을 지금에 와서는 모두 다 보상받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뒤로 왠지 모르게 알 수 없는 그 어떤 감정의 여운이 자리하는 걸까? 국민연금에 기대어 살며 국민연금이 효자가 된 지금 옅은 저녁노을은 어머니의 따스운 등 너머로 말없이 저물어 간다.


[2017-06-09]


출처:국민연금 뉴스-따뜻한 세상 ( ☞ http://bitly.kr/8J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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