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여보 당신은 살림꾼

근로복지공단 보험가입부 | 2017-12-13 00:00
               

(2016년도 수급자 생활수기 당선작입니다.)


“안녕하세요?”
“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네..... 장애연금 신청하러 왔습니다.”


2000년 8월 21일
“뇌졸중”이라는 무서운 병이 남편을 덮쳐 모든 것을 빼앗고 반쪽 육신만 남겼다. 남편의 머리는 기억도 추억도 꺼낼 수 없는 큰 흉터로 가득하다. 짜릿했던 연애이야기, 달콤했던 신혼이야기로 가슴이 두근거릴 수도 없다. 자기 꼭 닮아 좋아하던 사랑하는 아들에게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들려줄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닫히고 묻혔다. 가슴 미어지는 일이다. 무지(無知)로 예고를 알아채지 못한 어리석음은 평생의 한으로 남는다.


장애연금 신청을 위해 국민연금공단 문을 두드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허둥지둥 일상이 뒤범벅이 되어 쉴 틈없이 살기 바빴다. 아내로, 엄마로 15년을 살아온 내가 가정을 송두리째 책임져야 하는 일은 두려움으로 밀려왔고 세상에 부딪쳐야 하는 많은 일은 서툴기만 했다.


검사실, 수술실, 입원실, 중환자실을 오가며 가슴 조이던 시간들, 기억 한 조각, 발걸음 한 걸음이라도 붙잡기 위해 매달리던 재활치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뇌병변장애 2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위험한 고비와 슬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진료기록부 및 의사소견서, 장애증명서를 챙기다보니 제법 두툼한 뭉치가 마음을 또 한 번 아프게 했다.


장애연금 신청기간 만료를 코앞에 두고 공단을 찾은 그 날, 상황을 안쓰러워하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직원 덕분에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공단 문을 나서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내 신랑이 왜! 든든했던 아이들의 아빠가 왜 왜.......왜!


남겨준 육신, 행여 그마저도 멈추게 될까 두려워 남편에게 신발 끈 옭아매 나서보기도 하고, 굽어진 손가락에 연필 쥐어주고 한 줄 긋는 선에 웃음 짓고 두 줄 긋는 선에 박수치고, 색 바랜 사진 꺼내놓고 기억 살리기에 애쓰다보면 희망의 파도가 잔잔히 밀려오며 기적을 꿈꾸기도 한다.
내일 아침 눈 떴을 때 “여보, 아이들 어디 갔어?” 제발 그래주길……


16년이라는 긴 세월은 내게 슬픔과 고통만 주지는 않았다. 사람으로 키워 나갔다. 사랑과 겸손을 가르쳤고 용기와 지혜도 주었다. 당시 초6, 중3이었던 두 아들도 반듯하고 씩씩하게 자라 사회 일원이 되었다. 감사함이 넘쳐난다.



“여보! 미안해. 당신을 많이 잃고서야 우리는 배웠고 알 수 있었어. 정말 미안해”


2006년 3월 20일 공단으로부터 “장애2급 지급결정” 통지서가 보내 왔다. 2002년 9월부터 소급 적용 돼 1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 지급되고 매월 272,990원이 지급된다는 내용이었다. 고마워 읽고 또 읽었다. 세월이 흘러 지급액도 인상 돼 현재는 343,390원을 받고 있다. 우리 집 살림의 일부를 해결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총 불입액 100여만 원으로 이런 혜택을 받고 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여보, 당신 살림꾼이에요 오늘도 당신 돈으로 전기세, 수도세 내고 당신 우유 샀어요. 고마워요”
여름날 찜통더위 기억이 아직 뚜렷한데 단풍소식이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첫 눈 소식이 들려온다. 반칙 없는 자연의 순리, 자연을 닮고 싶다. 강렬한 햇볕이 있어 오곡이 무르익듯이 내 앞에 펼쳐지는 일들 다 이유가 있고 뜻이 있으리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변화에 순응하며 주변에 널린 행복을 꿰차고 따뜻한 차 두 잔 준비해 신랑 곁으로 간다.
“여보, 차 마시자”


[2017-04-05]


출처:국민연금 뉴스-따뜻한 세상 ( ☞ http://bitly.kr/3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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